Sunday, September 01, 2013

중학생이 만난 변태





중학생 시절. 
암묵적으로 우리들끼리 쉬쉬하던 곳이 있었는데, 산길로 이어진 지름길이었다. 약 3~4분 정도를 단축할 수 있다.
당시 나는 누구보다 일찍 반에 도착하여 창문을 열고 환기시키는 걸 좋아했다. 산 중턱(그래봤자 동네산 수준)에 있는 학교라 아침 일찍 도착하면 안개 낀 풍경을 감상할 수도 있었고 고요한 교실 안에서 혼자 새 소리 듣는 걸 낙으로 삼았다. 그러기 위해선 빨리 도착할 수 있는 '지름길'의 유혹을 피할 수 없었는데, 뭐든 하지 마라는 것이 가장 재미있다고 늘상 이 위험한 길로 등교했다. 그러던 내가 이 지름길에 발을 떼게 된 결정적인 사건이 있었다.

이 지름길에는 흉흉한 소문이 돌았다.
누가 목 매달아 죽었다는 얘기도 있었고 고등학생 언니 오빠들이 모여 본드를 분다는 걸 목격했다는 학생도 있었다. 주변에 고양이 사체를 묻은 곳이 있어서 늦은 밤 고양이 귀신이 나타난다고도 했다. 직접 경험하지 않은 걸 믿는 성격이 아니라 별반 대수롭지 않게 흘려 들었으나, 지름길로 갈 때마다 아주 묘한 기운이 느껴지는 게 기분이 썩 좋지 않았다. 

그 날도 여느 때처럼 혼자 등교하는 길이었다. 이상하게도 평소와는 달리 두 갈래 중간에 서서 한참을 망설이다 결국 지름길을 택했다. 산길을 맞닥드릴 땐 숨 한 번 크게 쉬고 빠른 걸음으로 성큼성큼 걷는데 맞은 편에서 사람 발자국 같은 인기척을 느꼈다. 10년이 넘은 일이라 인상착의는 기억하기 어렵지만 40대 정도의 큰 키의 아저씨였다. 나를 향해 다가오는 아저씨에겐 그냥 지나치는 행인이 아닌 것 같은 촉이 들어 한 발자국 씩 걸음을 옮겼는데 그 기분 나쁜 '촉'은 예상을 빗나가지 않았다.

아저씨는 나를 지나치며 몸을 만지려는 행동을 취했고 마치 속삭이듯 더럽고 불쾌한 말을 해댔다. 
간신히 몸을 돌려 손길을 피할 수 있었는데, 아침 일찍 아무도 없는 산길에 나와 아저씨 단 둘뿐이라는 생각에 너무 무서워 정말 앞만 보고 달렸다. 아저씨는 나를 쫒아왔고 거의 잡힐 듯한 거리를 두고 산길에서 벗어나자 더는 따라오지 않았다. 

길가엔 등교하는 학생이 꽤 있었고 그제서야 안심이 되었는지 다리에 힘이 풀려 바닥에 주저 앉았다. 학교가는 내내 분을 삭히며 계속 울었다. 그 후로 마음이 안정될 때까지 당분간 '지름길'은 가지 않았다. 친구는 물론 동생이나 부모님께도 겪은 일에 관한 얘기는 하지 않고 나만의 비밀로 간직했다.

몇 달 동안 지나가던 아저씨만 봐도 경계하듯 피해다녔는데 더는 이렇게 살면 안되겠다 싶었다. 아저씨에게 직접적인 해를 당하지 않았지만 내게 했던 모욕적인 말에 수치심을 느껴 혼자 복수를 하기로 결심했다. 사실 지금이라면 절대 상상할 수 없는데 15살짜리 중학생이었으니 뭔가 철없이 부린 객기였던 것 같다.

다시 지름길 등교를 하기 시작했다. 

몇 달 동안 지름길로 다니며 기다린 끝에 저 멀리에서 다가오는 아저씨를 발견할 수 있었다.
예전에는 무서워서 보지도 못한 아저씨의 얼굴을 똑바로 보며 걷는데 마치 웃는 듯한 기분 나쁜 입꼬리는 두 번째 만남이더라도, 작정하고 달려들었어도 무섭고 소름 돋긴 매한가지였다. 일부러 경사진 곳 내리막길 쪽에서 기다렸는데 예상대로 아저씨는 같은 패턴으로 다가오며 내 몸을 만지려고 손을 뻗었다. 산길을 오르기 전 주웠던 짱돌로 급소를 내리친 후 내리막길로 몸을 밀쳤다. 비명을 지르며 온 몸으로 데굴데굴 굴러가는 아저씨가 어떻게 되었는지는 모르겠다.

행여 내 얼굴 기억해서 해코지할까봐 지금까지 그 지름길은 절대 안 간다. 뭐 갈 일도 없지만…
몇 년이 지나 친구들에게 말하니 미친년이라는 말만 들었지만 지금은 여러 소문 때문에 그 산길은 공원이 되어 운동하러 가는 주민들로 북적인다고 한다.

공포스러웠던 기억.
그리고 15살짜리 나름대로의 복수극이 떠오르는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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