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nday, December 08, 2013

[MONOLOGUE] 12-1





오랜만에 동네 카페에 왔다. 마감 때를 제외하곤 거의 올 일이 없는데 모처럼 쉬는 날에 누구도 만나지 않고 내 시간을 갖기로 했다. 카페에 나서기 전 노트북을 챙긴 뒤 책을 읽고 싶어서 책장 가득 꽂혀 있는 서적을 봤다. 읽을 책은 참 많은데 오늘따라 더럽게 읽고 싶은 책이 없다. 그래서 오후 내내 동네에 있는 서점과 헌책방에서 시간을 보냈다. 평소였다면 사고 싶은 책이 한두 권쯤은 있는데 오늘은 빈손이다. 정말 이상한 날이다.


오늘 새벽, 문득 좋아하는 영화관인 아트나인 상영 표를 봤다. 요즘 옛날 영화를 재개봉하는 일이 잦아 기분이 좋다. 특히 보고 싶었던, 그래서 DVD까지 샀던 화양연화를 상영한다. 물론 DVD는 꺼내보지 않고 먼지만 쌓였지만 말이다. 왕가위 감독의 삼색로맨스라는 주제로 화양연화와 중경삼림 그리고 동사서독 리덕스까지 극장에서 볼 수 있다. 하고 싶은 말은 영화 소개가 아니므로. 옛날 옛적 그때가 중학생 때였나. 한창 영화나 책에 좋은 글귀를 찾아 모으던 때가 있었다. 그땐 쥐뿔도 모르면서 사랑과 이별에 대한 글을 어찌나 좋아했는지. 그 중에 중경삼림 대사도 있었다. 화양연화 대신 중경삼림 영화표를 끊었다.

관객은 나 포함해서 6명 정도.


극장 밖으로 나와 이어폰을 귀에 꽂고 할 일 없는 사람처럼 서점 두 바퀴쯤 돌았다. 4천 곡쯤 들어있는 아이팟은 배터리를 충전해야 했고 요즘 멜론으로 음악 듣는 일이 드물게 됐다. 그럼? 예전에 받은 어플을 이제야 유용하게 쓴다. 장르별로 들을 수 있고 앨범 재킷이 아닌 곡과 관련된 뮤직비디오나 영상도 볼 수 있다. 듣던 노래만 지겹게 반복되는 게 아니라 나름 귀가 즐겁다.


늦잠을 잔 탓에 허겁지겁 준비하느라 극장으로 가는 길은 참 더웠다. 게다가 잠 깨려고 커피까지 사야 했으니 시간은 정말 촉박했다. 집으로 가는 길은 한결 여유로워 오히려 추웠다. 극장에서 집까지 걸어가려면 10~15분 정도를 걸어야 한다. 헌책방 들리느라 정류장을 조금 지나쳤더니 다시 되돌아가기 싫어서 그냥 걷기로 했다. 그제야 무심코 흘려버린 계절의 변화가 시각적으로 다가온다. 전까진 덥고, 춥고를 몸으로만 느꼈다. 가로수 잎이 바람에 뒤엉킨다. 말라 비틀어지고 푸석푸석하니 수분 하나 없다. 요 몇 달 떨어진 낙엽 줍는 재미로 살았는데 이젠 아이러니하게 밟는 재미가 들렸다. 모양새는 괴기스럽지만 우자작 바스락 거리는 소리가 좋다.


동네엔 아주 큰 수족관이 있다. 이 길을 걸을 때면 늘 수족관 밖에서 바글바글한 물고기를 보는데 시간을 할애한다. 그렇다고 물고기를 좋아하는 건 아니다. 어릴 때 집에 어항이 있었다. 지금 물비린내를 참을 수 있는 건 아마 그 때문일 것 같다. 주기적으로 아빠는 어항을 청소했고 그때마다 도왔다. 금붕어를 키우다, 열대어를 키우다, 마지막으로 민물고기를 키웠다. 쪼그려 앉아 손가락으로 어항을 또르르 거리며 놀다가 금세 질려서 일어났다. 아무리 손가락을 놀려도 우리집 물고기처럼 그런 반응이 없다. 혼자 애정 하는 것만큼 재미없는 건 없다.


책장에 꽂힌 책 중에 아주 구석에 자리 잡은 전혜린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가 눈에 띈다. 이 책은 약 4분의 1 정도만 읽고 덮었는데 그 이유는 한자가 많아서였다. 1982년도 책이니 그럴만했다. 그래도 읽을까 싶어서 가방에 넣었지만, 이 글을 쓰기 전 약 5페이지 정도 읽다가 다시 그만두었다. 책을 다 읽기 위해선 두 가지 방법이 있는데 한가지는 개정판을 사서 읽거나 아니면 한문 공부를 해야 하는 거다. 둘 다 고민된다. 


곧이어 커피를 가져가라는 진동벨이 울렸다. 쿠폰 10개를 다 채웠으니 공짜 커피다. 오늘만 뜨거운 커피 두 잔째다. 직원이 쿠폰 제도를 없앴다고 말한다. 마지막 쿠폰 종이다. 커피값이 얼마나 하길래 이렇게 각박하나 싶었는데, 여기에 올 때마다 몇 시간이고 앉아 있으니 커피값보다 자릿값에 가깝다는 걸 새삼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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