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turday, April 07, 2012

CAFE SPY



요즘 통 잠을 이루지 못하는 동생을 따라 24시간 연다는 커피 체인점에 왔다.
저녁 늦게 오는 경우는 극히 드물었고 최근엔 단 한 번도 없어서인지 익숙하지 않았지만, 아침까지 뜬눈으로 밤을 보내는 동생이 안쓰럽다면 안쓰러워 동행했다.
동생은 그림을 그리고 나는 노트북을 가지고 왔다.
그리고 메모장을 열어 카페 안에 사람들을 염탐하기 시작했다.



어떤 이는 친구와 이야기를 끊임없이 주고받고, 어떤 이는 홀로 랩탑 화면을 바라보며 자신의 오른쪽에 있는 음료를 홀짝거리고 있다. 어떤 음료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끊임없이 음료에 꽂힌 스트로우를 쪽쪽 거리는 걸 보니 단 음료가 분명했다.

아까부터 어떤 여자는 책을 한 페이지도 못 넘기고 있다.
그걸 알 수 있었던 건 그녀가 넘기지 못한 페이지 한쪽 가득 사진이 실렸기 때문에.
똑같은 사진이 각 페이지마다 있지는 않을 텐데 말이다. 아무래도 그녀는 책에 집중하지 못하고 딴생각을 하고 있는 것 같다.

재미있는 장면은 나와 7미터 정도 떨어진 테이블의 남자다.
그의 테이블엔 노트북도 있고 책도 있다.
쉴 새 없이 두 가지의 일을 병행 중인데, 내가 그를 재미있다고 생각하는 건 그의 옆을 지나가는 사람을 계속 쳐다본다는 사실이다.
무엇하나 집중하지 못하는 성격인가, 아니면 다른 이들의 행동이 궁금한 걸까.
그것마저 아니라면 나처럼 카페 안에 사람들을 글로 쓰고 있을지도 모른다.

나의 바로 옆 테이블 여자 두 명은 추운 봄날인데 아이스크림을 먹고 있었다.
물론, 나도 찬 음료를 마시고 있으니 편견일랑 고이 접어두고 다른 이야기를 해보자.
순식간에 보라색을 띤 아이스크림 두 덩어리가 사라졌다. 그러려니 생각했지만, 그녀들의 옆엔 라지사이즈의 다 마신 듯한 테이크아웃 음료 두 개가 덩그러니 자리 잡고 있다.
그것도 모자랐는지 여자 한 명이 자신의 가방 속 음료통을 꺼냈다. 물을 가져와 통 안에 적정량을 넣고 왼손으로 흔들며 맛을 본다. 아무래도 통 안엔 어떤 가루가 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선 얘기한다.

'요즘 다이어트해서 살 빼는데 좋다는 가루 주문했어.'




세상엔 수많은 사람이 있다.
지금 내가 존재하는 이 공간엔 어림짐작으로 사람 40명 정도가 있지만, 그들의 외모는 경이롭게도 모두 다르게 생겼다.
인간을 만든 조물주의 미적 감각이 대단한 건지, 인간과 인간의 조합적인 문제인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내가 알 수 있는 사실은 모두 한곳에 있다는 사실 외에 공통점이 전혀 없다는 것.




이 넓은 공간엔 한 명의 손님들이 작업하기 위해 몰렸고, 두 명의 손님들은 수다를 늘어놓느라 정신이 없다.
신기하게도 세 명의 손님은 단 한 테이블뿐이었다.
새벽 12시 20분. 으리으리한 손님들이 나타났고 그들의 존재와 함께 우리는 모두 일제히 고개를 돌렸다.
8명의 단체 손님이다.
거의 만석이었기 때문에 붙어있는 테이블이 없어 직원은 앉아 있는 손님께 정중히 예를 갖추고 자리를 옮겨 달라는 말을 전했다.
흔쾌히 자리를 옮긴 손님이 떠나간 자리에 8명의 사람이 각자의 의자에 앉았다.
내 시선은 이미 그들에게 집중되었고, 그들이 주문하는 음료가 무엇일지 궁금해졌다.
연령층도 다양했고, 어떤 이는 주도적으로 대화를 이끌어나가고 또 다른 이는 잠자코 고개를 끄덕이며 들었기에 성격이 다를 것은 분명했다.
어느덧 주문한 음료가 나왔는지 그들 테이블 위에 있던 진동벨이 울리기 시작했다.
이들 중 나이가 어려 보이는 사람이 일어나 트레이 하나 가득 담긴 음료를 가져왔는데 난 그순간 혼자서 키득키득 웃을 수밖에 없었다.
딸기주스.
모두의 음료는 딸기주스였다.
어느 한 사람 일탈 없이 모두 같은 음료를 주문한 거다.
그 순간 고등학교 때 일화가 떠올랐다.
일요일. 교회 친구들끼리 예배가 끝난 뒤 근처 분식집으로 향했다. 여자 5명과 남자 4명이었다.
나를 포함한 여자 테이블엔 온갖 메뉴에 관한 토론이 시작됐다.
그리하여 얻은 결과는 '라볶이와 김밥, 치즈라면과 쫄면, 그리고 돈가스'였다. 전부 다양한 메뉴다.
사실 내꺼 네꺼 하는 것 없이 가운데에 두고 다 같이 먹는 게 익숙하다면 익순한 것이 바로 여자니까.
방금 다른 이들의 음료가 무엇인지 궁금했던 것처럼, 당시에도 바로 옆 테이블의 남자 친구들의 메뉴가 궁금해서 쳐다보니 그중에 한 명이 크게 소리친다.
'여기 돈가스 4개요.'라고.



어느덧 시간은 새벽 1시 40분을 넘기고 있었다.
이 공간 안에 있는 이들은 대부분 20대 정도로 보이는 연령대였다.
물론 시간이 시간인지라 그럴 수도 있고 대학가 근처라 그럴 수도 있지만, 이들은 동네 주민일지도 모르고 학생일 수도 있다.
이 카페에서 가장 저렴한 가격의 음료는 아메리카노로, 가장 작은 사이즈의 가격이 3,900원이다.
어떤 기사에서 '대한민국의 돈 없는 젊은이들'이란 주제에 글을 본 적이 있다.
이 기사에서 말하는 젊은이는 학생을 지칭하는 것으로 대학 등록금이 비싸진 요즘 밥을 거르는 이들도 많고 편의점에서 간단히 해결하는 사람도 있다고 한다.
하지만 이곳 카페엔 테이블 하나 비는 곳 없이 자리가 빽빽했고 사람으로 가득차있다.
방금 들어온 두 명의 손님이 자리가 없어 나가버렸다.
한 끼 값과 맞먹는 커피 가격은 사실 말도 안 되지만, 나를 비롯한 젊은이들은 모두 값비싼 음료를 마시고 있다.

물론, 나의 잘못되고 불편한 시선일 수도 있다. 편견에 가득 차 있을 수도 있다지만 적어도 내가 아는 대학생 중 단 한 명도 기사에 나올 법한 사람은 없다. 소비생활에 익숙한 사람만 가득하다.
최근에 패밀리 레스토랑 중 한 곳이 기념적인 행사를 진행했다.
17,900원의 런치 가격을 1만 원 한 장만 받겠다는 파격적인 할인이다.
그 소식을 당일 접했는데 오후 늦게 인터넷 기사를 보니, 그걸 먹기 위해 기다린 사람이 어마어마했다는 거다.
아침부터 기다린 줄이 마치 리미티드 에디션 제품을 얻기 위해 밤새 잠을 포기하고 기다리는 이들과 별반 다를 게 없었다.
그걸 보니 '대한민국의 돈 없는 젊은이'가 아니라 '대한민국의 돈 많은 젊은이'라는 표현이 더 어울릴 법하다.
돈이 없어서 그 많은 줄을 기다리는 게 아니냐고?
뭐,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한 끼 식사에 1만 원이라는 돈을 투자한다는 건 월급을 받는 직장인인 나도 벌벌 떨게 만드는 금액이다.

나는 지금 내가 마시고 있는 커피 값보다 저렴한
회사 근처 3,500원짜리 '봉주르'에서 행복감을 느끼며 밥을 먹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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