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dnesday, November 06, 2013

할아버지





평소 늦잠 자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 그건 쉬는 날이어도 마찬가지다. 그렇다고 엄청 일찍 일어나진 않지만. 쉬는 날이니 뭘 할까 고민하다 꽃시장에 가기로 했고 무슨 꽃을 살지도 노트에 적어 두었다. 현금도 챙겼다. 그러나 맞춰 둔 9시가 아닌 10시에 일어나는 바람에 서둘러 준비했다. 오후 한 시까지만 문을 여니 부랴부랴 챙기면 충분히 다녀올 만 했다. 준비의 마지막 과정인 머리를 말릴 때쯤 문득 병상에 계신 할아버지 얼굴이 떠올랐다.

나는 외할아버지의 첫 손녀로 가장 많은 예쁨을 받았다. 그래서 할아버지 기억 속엔 내 어린 시절 모습이 고스란히 저장되어 있다. 할아버지는 참 강인하고 똑똑하신 분이다. 우리를 번쩍 들어 올릴 만큼 체격도 좋았고 좀처럼 자지 않는 우리를 품에 안고 전래동화를 읊어주실 정도로 다정했다. 그런 할아버지가 병상에 누워 계신다. 살집이라곤 찾아 볼 수 없을 정도로 야위었고 거동도 불편하고 제대로 음식을 드시지도 못한다. 할아버지는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많이 아팠다.

꽃시장을 가겠다는 생각을 버리고 병원이 있는 일산으로 향했다. 사갈 수 있는 게 고작 주스 상자와 통조림뿐이었다. 통조림을 따 안에 든 백도를 먹기 좋은 크기로 잘라 할아버지 입에 넣어 드렸다. 어릴 땐 할아버지가 내게 곧잘 해주신 건데 이젠 내 몫이다. 백도 두 덩이를 다 드실 동안 눈물이 나올 것 같았지만, 꾹 참았다. 주무시겠다는 할아버지를 눕히고 할머니와 나, 동생은 간이침대에 앉았다. 우리의 남자친구를 궁금해하고 또 어릴 때의 이야기도 하셨다. 그러다 할머니는 주무시는 할아버지를 바라보며 말씀하셨다.

"할아버지는 자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걸 알고 계신다."

나는 사랑하는 사람을 단 한 번도 떠나 보낸 일이 없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방법으로 슬픔을 감추어야 할지 참아야 할지도 모른다. '일어나지 않는 일을 미리 생각하지 말자'고 늘 새겨두지만 어느새 성큼 내 앞에 와있다. 머릿속에 이렇다 할 메뉴얼이 없으니 익숙하지 않은 일에 감당해야 할 방법을 알지 못한다. 그래서 죽음의 문턱 앞에 위태롭게 서 계신 할아버지가 우리만 남기고 영원히 작별을 고한다면 그걸 심적으로 참아낼 용기가 나지 않는다.  

따뜻한 빛처럼 반짝이던 소중한 존재가 그늘이 될 극의 마지막이 언제가 될지도 모른다. 해드린 게 단 하나도 없다. 그렇다고 정작 해드릴 수 있는 것도 없다. 참으로 슬픈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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