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처럼 한가롭게 쉬는 날을 맞아 뭘 할까 궁리하다 문득 이런 생각조차 쓸데없는 소비라는 걸 느꼈다.30년을 살며 맘 편히 쉬어 본 적이 며칠이나 될까. 조용한 어느 휴일, 동생은 내게 마땅히 할 일이 없으면서 일찍 일어나 분주하게 집 안을 왔다 갔다 하는 게 이해되지 않는다고 했다.
"그게… 오전 열 시 이후에 일어나는 건 뭔가 인생을 낭비한다는 기분이 들어. 밀린 책을 읽거나 쌓아둔 자료를 스크랩하거나 하다못해 노트북 안에 영화를 보면 좋잖아. 일찍 일어났으니 오후에 다른 일정을 잡을 수도 있고."
그럴 때마다 늘 이런 식으로 조용히 변명하는데 동생에겐 그 말이 썩 와 닿지 않는 모양이다.
"그런데 표정은 뭔가에 쫓기는 듯 피곤해 보여. 쉬는 날인데 오전부터 오후, 저녁까지 일정을 짜 둘 필요는 없잖아. 이도 저도 아닐 바엔 차라리 아무 생각 없이 누워 있거나 잠을 좀 더 자. 오히려 그편이 더 나아."
그렇다. 어릴 때부터 아무것도 하지 않는 인간은 한심하다는 생각으로 바쁘게 살았다. 30대가 된 지금 몸에 축적되었던 쌓인 피로가 확연히 드러난다. 바쁘게 살았다고 알아주지 않는데 자신을 돌봐야 할 때 다그치고 말았다. 물론 어떤 점에서야 장점은 있겠지만 썩 좋은 방법은 아니라는 게 요즘 드는 생각이다. 정말로.
한 달 전, 태희 언니 집에 갔다.
언젠가부터 누군가의 집과 작업실에 가면 가장 먼저 책장에 꽂힌 책이 무엇인지 들여다보곤 한다. 정확한 건 아니지만, 책을 보면 취향을 단편적으로나마 알 수 있다. (그렇다고 언니의 취향에 관해 모르는 건 아니다.) 언니 책장에 꽂힌 책은 뭔가 '여유'라는 단어의 적합한 게 대부분이다.
언니는 자신의 성향에 맞는 책을 고르는 것일까, 아니면 이러한 책으로 점점 변화되는 것일까? 뭐 크게 중요하지 않다.
무심코 책 하나를 꺼내 책 표지를 들여다보았는데 빌려줄 테니 읽어 보란다. 토막 이야기로 이루어진 책인데 단숨에 읽을 요량은 아니었으므로 이제껏 몇 편 정도만 봤다.
책 제목은 '주말엔 숲으로'라는 마스다 미리의 책. 알다시피 꽤 유명한 만화책이다. 한 일화를 읽다 격하게 공감하는 대사가 있어 언니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돌아온 대답은 얻는 것과 느끼는 게 있어서 다행이라는 것. 본질적인 부분이라 배우기보다 느끼는 게 중요하겠지. 그래. 이 글을 쓴 이유도 바로 이 한 문장 때문이다.
인간은 목적지에 도착하기 위해서만 걷는 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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