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nday, February 02, 2014

[MONOLOGUE] 2-1



마감 후 며칠 동안 쉬는 것에 기쁨을 맛보는 것도 잠시- 설 연휴를 맞아 전라북도 김제까지 다녀와야 했다. 서울 사는 나로선 평생을 오고 갔지만 절대로 익숙해질 수 없는 게 차 안에서 오래 버티는 것과 시골집에서 지내야 하는 것이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우리 시골은 말 그대로 '깡촌'이라 주변은 온통 산과 논, 밭이고 가로등이 변변치 않아 저녁 일곱 시만 되면 어디에도 못 간다. 차라리 새벽녘 서울이 더 환할 정도이니 할말 다했다. 텔레비전도 잘 나오지 않고 인터넷이란 없다. 물론 조그마한 구멍가게도 없어서 시골집 가기 전엔 군것질거리를 포함하여 모든 장을 봐두어야 한다. 어디에도 가지 못하고 집에서만 있어야 하니 책을 가져가거나 노트북에 영화를 넣어 두는 건 무척 익숙한 일이다.

그럼에도 신 나고 좋은 건 짐을 꾸리는 과정이다. 예민한 피부 탓에 물갈이 걱정으로 전용 비누까지 챙겨야 하고 여행용 화장품의 유통기한을 의심하여 집에서 쓰는 기초 화장품까지 가방이 꽉 찬다. 게다가 돈이 될 만한 물건은 가방에 넣어야 직성에 풀리는 성격이라 단 며칠을 묶더라도 장기간 여행하는 기분이다. 

재작년 늦은 가을에 일주일 동안 파리를 간 적이 있다. 몇 시간 전까지 마감에 시달리다 한숨 못 자고 부랴부랴 짐을 꾸려야 했기에 하마터면 공항에 늦게 도착할 뻔했다. 하지만 한 달 전부터 만들어 둔 '파리 노트(2013년 8월 포스팅 참고)'에 하루마다 입을 옷을 그림 그리고 글도 써두어 멘붕을 겪진 않았다. 심지어 경유하는 홍콩에서나 기내 안에서 갈아입을 것까지 적어 두었으니 꼼꼼하다 못해 예민할 정도다. 

짐을 꾸리는 것도 나름대로 방식이 있다. 먼저 울퉁불퉁한 바닥엔 진공팩에 각각 넣은 신발 두세 켤레로 판판하게 만든 뒤 두꺼운 옷 몇 벌을 돌돌 말아 빈틈없이 차곡차곡 넣는다. 20인치가 넘는 캐리어는 비행기로 부쳐야 하기에 깨지기 쉬운 물건은 얇은 옷으로 겹겹이 싼 뒤 중간에 넣고 가장 위쪽은 비교적 꺼내기 쉬운 물건을 올려 둔다. 그물 칸막이가 쳐진 캐리어 뚜껑을 채우는 것도 이와 별반 다르지 않다. 

노트 덕분에 사소한 것 하나까지도 빠뜨리지 않고 모두 가져올 수 있었다. 그렇게 하다 보니 치명적인 단점이 있었는데, 캐리어가 터질 정도로 물건이 많아지는 거다. 여행을 목적으로 다녀오다 보니 하나둘 사모은 물건이 가져온 짐보다 많아졌다. 게다가 용량 제한이 엄격한 파리 공항에서 낯선 외국인이 내 짐을 푸는 꼴은 차마 볼 수 없었다. 어떻게 하나 발만 동동 구르며 울며 겨자 먹기로 한국으로 가기 하루 전날 가져온 옷 몇 벌을 버렸다. 파리에 버리고 온 내 물건은 지금쯤 어디에 있을까? 쓰레기 처리장으로 갔을까? 아니면 훗날 빈티지 제품이랍시고 물 건너 한국 구제가게에서 팔고 있을지 모르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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